부미푸트라정책 - 평등을 위한 차등정책
말레이지아에서 신문을 읽다 보면 주택 분양할 때 부미푸트라에게는 10% 할인해 주겠다거나, 몇 채는 부미푸트라에게 할당해 놓았다는 등의 광고가 공식적으로 게재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좀더 깊이 들여다보면 부미푸트라 기업에게만 기업자금을 주겠다는 정부금융기관도 있고, 부미푸트라만 거래할 수 있는 토지가 있으며, 고용정원의 일정 수를 부미푸트라에게 배정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바로 말레이지아 정부가 강력히 추진하고 있는 부미푸트라정책 때문입니다.
우선 부미푸트라라는 용어를 살펴보면 부미(Bumi- 땅 또는 대지)와 푸트라(Putra- 자손 또는 왕자) 라는 단어의 복합어로, 이 땅의 자손 혹은 이 땅의 주인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부미푸트라정책은 다시 말해 이땅의 주인을 위한 정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누가 이땅의 주인인가
말레이지아는 총인구 2천2백만명 중 약 51%가 말레이계이고, 중국계 27% , 토착인종 11% 인도계 8%, 기타 3%가 있습니다. 말레이계도 이슬람이 전파되면서 따라온 터키, 이란,이라크,사우디, 파키스탄, 인도계가 있고, 인도네시아에서 건너온 사람들, 태평양에 있는 파푸아뉴기니, 사모아, 통가등에서 건너온 사람들이 있습니다. 약 60여개의 종족이 문화, 언어 종교를 달리하여 살고 있는 인종의 전시장 같은 곳입니다. ,
그들 중 이 땅에 아주 오래 전 이주해온 종족과 토착인, 이슬람교도들을 통털어 부미푸트라 라고 하는데, 전체 국민의 60%가 부미푸트라에 해당되고, 중국계, 인도계는 부미푸트라에에서 제외되었습니다. 상대적으로 늦게 이주해온 중국계와 인도계를 제외한 것입니다. 영국의 식민통치 160여년동안 고무, 야자 등의 농장과 주석광산 개발을 위해 인도인과 함께 노동자로 이 땅에 이주해온 중국인들은 근면을 바탕으로 영국인이 물러간 자리를 차지하면서 부를 축적해 나갔습니다.
중국인들이 경제권을 대부분 장악하게 되자 상업의 중심거리에는 한자간판이 넘쳐 나고, 중국식 주택, 학교 건립, 불교사찰 건설 등으로 이 나라가 중국인지 말레이지아인지 모를 지경이 되었습니다. 영국 식민통치에서 정치적으로 독립은 되었으나 중국인과의 격심한 빈부차로 또 다른 경제적 지배를 받게 된 것입니다. 노무자로 뒤늦게 이주해 온 중국인들이 더 잘 사는 것도 배 아픈데 , 경제적으로 못사는 말레이계를 무시한 겁니다. 깔보고, 학대를 한 겁니다. 습관적으로 중국계는 아침 저녁으로 향을 피우니 냄새도 그렇고, 이슬람국가에 술과 여자와 도박을 좋아하는 중국문화가 맞지 않는 겁니다.
1969년 5월 13일 드디어 말레이인들의 쌓였던 불만이 폭발하였습니다. 이들은 중국인만 모여 사는 중국인 촌을 공격하고, 중국인만 다니는 중국영화관 앞에서 기관총을 난사했습니다. 중국상점이 있는 곳에 불을 지르고, 중국인을 죽여야 한다는 괴문서가 나돌고, 많은 사람들이 살해되었습니다.
이 폭동으로 집권당은 물론 각계각층에게 반성의 계기가 되었고 중국인 내에서도 반성이 뒤따랐습니다. 아무리 돈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중국인이라지만 이제 먹고 살 만하니 생명의 위협을 느끼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중국인들은 말레이인들이 사는 마을로 이사 기기도 하고 그들을 비인간적으로 대하던 태도도 자제하였습니다. 또한 집권당은 이러한 사태의 근본원인을 소득 불균형과 사회적 지위의 차이에서 찾았습니다. 이는 1970년도 말레이지아 내국인의 자본소유현황을 보면 알 수 있는데, 말레이계가 6.5%인 반면 중국계들은 90%의 자본을 소유하고 있었습니다.
이 사태를 책임지고 물러난 초대 총리 Tunku Abdul Rahman의 후임인 Tun Abdul Razak총리는 각계각층의 전문가로 정책자문위원회를 구성하여 약 1년간에 걸친 논의 끝에 20년간(1971-1990)의 장기발전계획을 세웠습니다. 중국인보다 먼저 이주해왔지만 상대적으로 빈곤한 말레이인종, 토착인종, 이슬람교도들을 전부 통틀어서 부미푸트라로 정하고 이들을 구조적으로 부양할 수 있는 정책을 마련한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부미푸트라정책 입니다. 경제권을 장악하고 있는 중국계가 숫적으도 많아져서 전체인구의 50%이상을 차지 하면 이나라는 더욱 극심한 혼란이 야기 될 것입니다.
지구상에서 중국이라는 나라, 즉 중국본토, 대만, 홍콩, 싱가폴을 제외하고, 중국계가 30%정도 차지하고 있는 나라는 말레이지아 밖에 없습니다. 화교가 많다는 인도네시아, 필리핀, 태국도 5%미만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만약 말레이지아에 이민이 허용되면 중국계 인도계의 사돈에 팔촌들이 물밀듯이 몰려올테고, 그러면 이 나라가 중국인지, 인도인지 모를 나라가 될 것입니다.
이를 위해 근본적인 부의 재편성작업이 착수되었습니다. 부미푸트라의 소득증대를 위해 취업을 보장해주고, 고등교육의 기회를 확대하며, 사업자금을 조달해주는 것입니다. 고용 기회의 확대를 위해 비(非) 부미푸트라 기업도 부미푸트라를 고용하도록 장려하는 정책을 펴고, 중국인 기업에 임원으로 취직시켜 경영방법을 습득하도록 했습니다. 주택을 분양 받을 때도 10% 할인해 주도록 장려하였습니다. 또한 대학정원중 상당량의 쿼터를 부미푸트라에게 할당하여 경제적·사회적 지위의 향상을 도모하였습니다.
이 사태 전에 국립대학에 들어간 말레이계 학생이 30%를 넘지 못했는데, 60%까지 즉 인구비율로 쿼타를 정한 겁니다. 그러나 이러한 정책의 시행에 불만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상대적 불이익을 당한 비부미푸트라들, 특히 교육열이 높은 중국인들에겐 대학의 문이 너무 좁았기 때문입니다. 8개뿐인 종합대학의 정원이 6만명(1990년 기준)밖에 안 되는 데다 부미푸트라에게 60%의 쿼터를 배정해 놓았기 때문에 중국인들은 대단히 우수한 학생이 아니고서는 국내대학에 들어갈 수 없어 해외유학을 떠나야 했습니다. 또한 능력은 상대적으로 떨어지지만 단지 부미푸트라 기업이라는 이유만으로 급성장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지금도 국부적으로 차별정책에 대한 불만이 내재해 있기는 합니다. 그러나 이런 불만을 갖고 있는 중국/인도인들도 부미푸트라 정책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사실 중국인들은 중산층으로서 나름대로 의사표시의 통로를 가지고 있었고, 자기 종족의 이익을 기치로 내건 20여개 정당들이 난립하는 속에 중국인들의 정당은 연립내각내 제2의 계파로서 그들의 이익을 대변해 줄 수 있었습니다. 게다가 그들은 1957년 독립할 당시에야 비로소 정식 시민권을 부여 받을 만큼 정착의 뿌리도 약했고, 중국의 공산화로 돌아갈 조국을 상실한 상태였습니다. 행정부의 장차관 수를 보면, 부미푸트라계가 60%, 중국계가 30%, 인도계가 10%로 대체로 인구비율로 되어 있어 자기 종족의 이익을 나름대로 보호하고 있습니다.
어쨌든 인종간의 소득 불균형을 시정한다는 목적으로 극약처방 같은 차별정책을 실시한 지 30년 이상 지났고, 그 결과 전체 내국인 소유자본 중 30%를 부미푸트라계가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만족할 만한 수준은 아니지만 상당한 조정은 이루어진 것입니다. 또한 부미푸트라계는 소득과 생활의 향상이 이루어졌고, 중국상인으로서는 생명을 위협하던 이들이 구매력 있는 소비자로 바뀌어 서로에게 득이 된 셈이기도 합니다.
부미푸트라정책이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정치지도자들의 노력이 컸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인종분쟁, 종교분쟁을 피하기 위해 불평등을 감수한 것이고, 인종간 갈등이 항상 내재된 사회에서 불만이 쌓이지 않도록 Appeal 과 Compromise(타협)를 솔선해서 보여주었고, 이를 각 종족에 주지시켰던 것입니다. 넘어서는 안 되는 민감한 부분은 지켜주었던 겁니다. 자기 입지를 넓이기 위해 종족을 담보로 타 인종을 공격하고 비난하는 것을 자제해왔고, 선동하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국민화합을 이룬 말레이지아는 LA 폭등과 보스니아 내전을 보면서 안도의 한숨을 쉬게 되었고, 30여년 전에 발생한 비슷한 사태를 슬기롭게 헤쳐나간 것에 대해 자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소득격차로 인한 LA 폭동, 종교가 다른 집단끼리 반목하는 보스니아 사태들을 미연에 방지한 것입니다.
내부사정을 잘 모르는 외국인들의 눈에 부미푸트라 정책은 심한 인종차별정책으로 보입니다. 상대적 약자인 말레이계의 사회적. 경제적 지위를 향상시키고 말레이지아 사회를 실질적인 평등과 안정에 한 발 다가서게 한 정책, 실질적인 평등을 위한 차등정책이라고 평가 받고 있습니다. 그래서 남아연방과 같이 인종갈등이 있는 나라의 지도자들은 말레이지아의 부미푸트라 정책을 배우러 온다는 사실입니다. 이 정책의 성공으로 Vision 2020이라는 30년간의 대장정을 1991년부터 시작하였습니다.
부미푸트라 구성
부미푸트라(토지의 자손)는 다음의 3가지로 분류됩니다.
1)「오랑아슬리」로 불리는 원주 소수민족 주로 말레이 반도에 거주하는 원주민으로서, 숫자는 적으며 각지에 산재
2) 말레이계 민족
2개의 그룹으로 대별할 수 있으며, 1개그룹은 반도 동해안, 사라와크, 사바에 예전부터 정주하고 있던 그룹, 다른 1개 그룹은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에 걸쳐 인도네시아의 수마트라 섬으로부터 말라카 해협을 건너서 이주해온 그룹입니다. 이외에도 19세기 후반부터 주로 말레이반도에 이주해온 자바족 등이나 사바의 바쟈우족등이 말레이계 민족으로 편의상 분류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민족은 문화를 공유하고 이슬람교를 신앙으로 하고 있으므로 급속하게 말레이 사회에 동화되었습니다.
3) 비 말레이계 부미푸트라
사라와크, 사바에 예전부터 살고있던 민족으로서, 사라와크에는 이반족, 사바에는 카다잔족이 있으며 숫자도 많이 있습니다.
1)「오랑아슬리」로 불리는 원주 소수민족 주로 말레이 반도에 거주하는 원주민으로서, 숫자는 적으며 각지에 산재
2) 말레이계 민족
2개의 그룹으로 대별할 수 있으며, 1개그룹은 반도 동해안, 사라와크, 사바에 예전부터 정주하고 있던 그룹, 다른 1개 그룹은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에 걸쳐 인도네시아의 수마트라 섬으로부터 말라카 해협을 건너서 이주해온 그룹입니다. 이외에도 19세기 후반부터 주로 말레이반도에 이주해온 자바족 등이나 사바의 바쟈우족등이 말레이계 민족으로 편의상 분류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민족은 문화를 공유하고 이슬람교를 신앙으로 하고 있으므로 급속하게 말레이 사회에 동화되었습니다.
3) 비 말레이계 부미푸트라
사라와크, 사바에 예전부터 살고있던 민족으로서, 사라와크에는 이반족, 사바에는 카다잔족이 있으며 숫자도 많이 있습니다.
태그 : 부미푸트라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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